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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일단 창문을 활짝 열어두자. 날씨가 춥거나 좋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에필로그가 끝날 때가지만이라도 창문을 열어두기로 한다. 나는 이 연설의 시작부터 창문을 열어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자. 약수 사거리가 보이는가? 보이지 않으면 당신은 정상이다. 나 역시 창문을 연다고 해서 바깥에 약수 사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약수에 있는 본가라 할지라도 말이다. - 나는 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약수에 대하여 끄적였다. 그리고 연설했다.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바꿨을까 하는 물음이 든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매우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나는 ‘첫 번째’ 약수 아키비스트로서 성공적인 토크쇼 - ‘약수 사거리’를 마쳤다.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장대한 약수의 이야기..

블로그 (구) 2021.01.13

기록 방식

내가 기록해야 했던 것은 「장소」였고, 나는 ‘약수 사거리’라는 곳을 기록해 가기로 했었다. 약수 사거리를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기록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이를 위해 영화 스모크 (1995)를 관람하였다.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 속 이야기처럼 같은 시간 같은 구도에서 약수 사거리를 찍어보기로 결정하였다. 한 가지 장애요소는 내가 약수에서 줄곧 살아왔지만, 학기가 시작함에 따라 잠시 약수를 떠나 동탄에 내려와 있던 사실이었다. 나는 같은 시간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을 마음은 충분했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당장의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수업이 모두 끝나는 목요일이나 금요일날 서울을 올라가 도착하는 날과 주말까지 최선을 다해서 약수를 담고 (시간은 낮이든 밤이든 가능할 때 언제나)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그..

블로그 (구) 2021.01.12

사실적 정보

약수역 아키비스트는 오랜만에 약수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갔다. ‘왜 왔냐고 거기서 평생 살라고’ 삐짐 단계 중 ‘왕삐짐’ 상태인 우리 엄마를 제쳐두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우리 엄마는 단어 선택이 험한 편이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엄마와 많이 다투곤 했다. 물론 부모 마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다 진심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뒤부턴 그냥 무던하게 넘기려는 편이고, 그 날 역시 그러했다. 엄마에게 무대뽀로 애교 몇 번 부리고 밖으로 향했다. 내가 향한 곳은 약수 사거리이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은 바로 사거리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이다. 약수역에 내려 바로 앞에 보이는 이 사거리를 찍는 일이 요즘 나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강..

블로그 (구) 2021.01.11

환대와 우애의 기록세계

약수사거리 교통사고 - 사거리 대로변에 누워 있는 상상을 해요. 저 건너편 교회의 첨탑에 종 대신 걸려있는 생각도 한 두어번 정도 들어요. 선선한 금요일 저녁 오와 열을 맞추며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제가 느끼는 영감적인 감정을 모르고 지나치겠지요. 이런 느낌들은 좋아요. 자극없이 자극적이라 이 삶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요. 바쁜 인생 와중에 스쳐가는 주마등은 반성할 수 있게 해요. 말리서 바라보는 것은 너도 나도 특별하지 않은 것을 내 눈으로 각인할 수 있게 해요. 신이 된거 같아요. 아니면 가위에 눌렸거나. 붕뜬 세상이 슬픈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렇지 않게 만들어요. 모든 것을 침착하게 느려지는 것들 중에 맥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저 신나가요. 사거리 멀리서 나는 사거리가 되어..

블로그 (구) 2021.01.10

방문아키비스트의 진지한 좌충우돌

- “아, 시x” 약수 사거리, 사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행위이다. 약수 고가가 없어지고 몇 년, 다른 세상에서 호의호식하겠다고 내려온 이 불청객 무리는 약수 일대에 기어코 불가항력적인 계급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지금이 되기까지 나는 언제나 길을 거닐 때 땅만 보고 다녀야 했고, 뒤에 완전군장같이 수십 키로에 달하는 가방에 물건을 꽉꽉 넣어놓고 다녀야만 했다. 그것은 징계였다. 낮은 능력을 지닌 하찮은 존재들이니 너희는 그 대가들을 견디며 평생을 살아라! 라는 상징의 의미였다. 그것은 더욱이 우리와 저들의 갭 차이를 표면적으로 나타내주는 좋은 낙인이었고, 그들의 권위 아래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운명을 얼떨결에 ‘후천적’으로 부여받았다. 얼마 전, 약수동엔 이 일대..

블로그 (구) 2021.01.09

한강 - 흰, 흰 것을 향한 끊임없는 질투와 욕망, 애도 그리고 인사.

흰 – The Elegy of Whiteness 흰 것을 향한 끊임없는 질투와 욕망, 애도 그리고 인사. Elegy 라는 단어는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또는 침통한 묵상의 시 (네이버 지식백과) 라고 한다. 이 책의 부제. ‘흰’은 것은 어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비통해야 할까. 처음부터 비장하게 슬픈 정체 모를 이야기. 글쓴이의 처음 시점부터 우리는 보게 된다. 단어의 목록을 만들고 크게 결심하고 생각하면서 슬퍼하는. 무슨 슬픔을 애도하는 것일까. 그 아픔에 연고나 거즈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별하게 용감하지 않은 우리가 계속해서 발걸음을 앞으로, 살아보지 않고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가는 이유는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심장..

블로그 (구) 2019.10.22

행복의 역사학개론

*[시작] 오늘은 신기하게도 나를 만난 사람들마다 나에게 있어 ‘행복’ 이 뭐냐고 물었다. 행복은 애초에 척도로 나타내기 힘든 추상적인 단어의 개념인데 두루뭉실한 사람에게 그런 두루뭉실한 것의 단계를 내어보라하니 참으로 쉽지 않던 것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 행복이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 · *[미래] 나는 지금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정확한 어휘로 구체적인 표현을 하자면, 앞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내가 사고싶던 옷을 고민하지 않고 사고, 함께 밥을 먹을 때 할부로 돈을 긁을 지라도 거리낌 없이 밥을 산다던가, 글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나에게 돈을 주면서 쏠쏠한 부업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알뜰하게 재테크를 ..

블로그 (구) 2019.10.15

정말 '열심히' 살고 싶은 청춘들을 위한 청심환

정말 '열심히' 살고 싶은 청춘들을 위한 청심환 소개 1 · · 청심환이 필요하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원래 심장이 막 뛰고 긴장 잘 하는 성격이 아닌데, 요즘들어 부쩍 카페에서 자리값으로 커피를 사 마시면 심장이 요동치고 괜히 숨 쉬는 것도 긴장이 되고 어렵다. 청심환( 淸心丸) , 사전에 의하면 심장의 열을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사용하는 처방. 이라고 한다. 지금 별거 아닌 일에도 가슴만 막 벌벌벌벌 뛰고 있는 나에게 최고의 처방이 아닐까싶다. · · 그렇다면 왜 나는 지금 극도의 불안 상태이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열심히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너무 열심히 살고 싶은데, 그게 막상 잘 되지 않아 불안함이 더 커진 작은 대학의 복학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블로그 (구) 2019.10.02

온점을 사이에 두며.

글2 『온점을 사이에 두며.』 · 그래도 많은 사람들과 행복할 수 있던 한 주였다. · · 결론이다. 9월의 마지막 주를 살면서 얻은 큰 결론. 누군가는 안주하지 말라고, 이럴 시간이 없다고 누군가는 이만하면 좀 쉬어가도 좋다고, 괜찮다고 변덕같은 날씨만큼 어떻게 살아야할지 가늠이 안 잡히는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에게 '그래도.' 잠시라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것이 참 중요하다. · · 단풍이 될 수 없는 단풍 옆 운명이라고 해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어쨌든 익어가는 오곡이 되어간다는 뜻이니까. 사람마다 익어 물드는 타이밍이 다를 뿐이니까. · · 그만 좀 나이 먹었으면 좋겠다라는 즐거운듯 아닌 슬픈듯 아닌 변덕같은 문장의 재미난 고민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블로그 (구) 2019.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