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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정보 2021. 1. 11. 12:00

 

 

 

  약수역 아키비스트는 오랜만에 약수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갔다. ‘왜 왔냐고 거기서 평생 살라고’ 삐짐 단계 중 ‘왕삐짐’ 상태인 우리 엄마를 제쳐두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우리 엄마는 단어 선택이 험한 편이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엄마와 많이 다투곤 했다. 물론 부모 마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다 진심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뒤부턴 그냥 무던하게 넘기려는 편이고, 그 날 역시 그러했다. 엄마에게 무대뽀로 애교 몇 번 부리고 밖으로 향했다. 내가 향한 곳은 약수 사거리이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은 바로 사거리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이다. 약수역에 내려 바로 앞에 보이는 이 사거리를 찍는 일이 요즘 나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강제적으로 생긴 취미이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이곳을 찍어야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곳의 구도를 정하던 중, 거의 첫날에 나는 모르는 사람한테 욕을 처먹었다. ‘아다리’ 잘 맞게 일어난 오해인지 아닌지는 그 당사자만 알 것이다. 셀럽병에 걸린 듯 시끄럽게 걸어가는 젊은 커플이었는데, 여자의 입에서 “아, X발”이라는 단어가 아름답게 퍼졌다. 나는 참고로 인도의 끝에서 도로 방향을 찍고 있었고, 그들은 나보다 안쪽 인도에서 거의 나를 스쳐 가는 중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문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뻗쳤다. 저 앞에 걸어가는 중인 저 두 사람의 뒤통수에 똑똑 노크를 하고 ‘음식물쓰레기가 입에 걸레를 물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안 그래도 당시 과제가 첩첩산중이라 평일 주말 다 쉬지도 못하고 할 일에 치여 살고 있던 중이라 가뜩이나 예민한데 저 당당함에 나도 화답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혹자는 나를 ‘정신이 이상한 무서운’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나는 웬만해서 화 잘 안 낸다. 그 2년의 ‘깜빵지옥’ 같은 군대에서도 많은 부대원에게 욕먹던 후임에게 쓴소리 한 마디를 안 했었고, 4년 넘는 시간 동안 발암을 유발하는 수두룩한 조별과제들 할 때도 나쁜 말 한 마디를 안 했던 사람이다. (물론 딱 1번 뭐라 한 적이 있다. 70~8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내야 하는 조별과제 중에 조원 한 명이 네이버 블로그의 자료를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하여 나에게 줬는데 비슷한 전과가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거진 열흘간 새벽 6시에 자서 아침 9시에 자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던 때였다.)     

 

 

 

 

 

 

  아무튼 내 집이라고 생각했던 안락한 약수에서 여러모로 봉변을 당하게 되었다. 약간은 믿었던 것에게 배신을 당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굴러갈 일이 전혀, 1도 존재치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약수를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사진 한 장 찍는 것을 넘어서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편도 2시간이 넘는 그 여정 뒤엔 보이지 않는 예측불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기대해볼 만하다. 나는 엄마에게 애교를 부릴 줄도 알고, 숱한 조별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편이기도 하다. 군대도 헹가래도 받고 전역모도 받고 나왔다. 감사하게 휴가도 많이 받았었지. 그 ‘씨X’ 커플은 이후 여자친구에게 하소연한 뒤 잊기로 했다.

 

 

 

  나는 ‘약수 사거리’에 집중만 하면 된다. 목적이 있으면 장애물이 흐릿해져 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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