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 The Elegy of Whiteness
흰 것을 향한 끊임없는 질투와 욕망, 애도 그리고 인사.
Elegy 라는 단어는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또는 침통한 묵상의 시 (네이버 지식백과) 라고 한다. 이 책의 부제. ‘흰’은 것은 어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비통해야 할까.
처음부터 비장하게 슬픈 정체 모를 이야기. 글쓴이의 처음 시점부터 우리는 보게 된다. 단어의 목록을 만들고 크게 결심하고 생각하면서 슬퍼하는. 무슨 슬픔을 애도하는 것일까. 그 아픔에 연고나 거즈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별하게 용감하지 않은 우리가 계속해서 발걸음을 앞으로, 살아보지 않고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가는 이유는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심장한 이 책은 ‘하양’, ‘흰’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그 ‘하얀 무엇’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 더렵혀지지 않고 순박한, 아름다운, 채워지지도 않고 비워지지도 않은 것이 이 책의 형태와도 닮아 있다. 소설인 듯 소설 아닌, 시와 에세이, 산문집과 같은 것들과도 닮은 듯 아닌.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책 속의 이야기가 제발 소설이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내가 꿈꾸는 이 바램조차 소설이 된다. 그것이 이 ‘흰’이라는 것의 의미다.
흰,
태어난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를 향한 하얀 이야기들이다. 왜 그녀는 언니를 흰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겨울에 태어나서, 달떡처럼 얼굴이 희어서, 서리가 끼고 하얀 세상에서 하얗게 죽어가서? 혹은 흰은 태초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그 자체로 흰은 난해한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깨끗하지만 그에 반해 홀로 쓸쓸할 수도 있는, 이 살아있는 세상과는 다르게 더렵혀지지 않았고, 않고, 그러지도 않을 것인 흰과 언니에 대해 생각해봤다. 하얀 것들은 이 세상에 놓여지게 되면 금방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명이 짧다. 최고로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와서 뭉개지고 뒤섞여버린다. 모든 것들의 처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흰’이다. 그래서 언니의 동생은 언니를 향해 끊임없이 질투하고 갈망한다. 희지 않은 세상에서 언니 대신 살아가야 하는 이의 비통함과 쓸쓸함. 그리고 피 속에서 끓는 어떤 그리움을 가진 채 계속해서 살아간다. 삶이 때때로 무의미하고 그 무게가 짐짓 무거울 때가 있다. 흰 자체였던 언니는 그렇기 때문에 동생에게 한없이 아프면서 동생이 끝없이 질투하는 대상이다. 빈약하기에 너무 굳건하고, 무형(無形)스럽기엔 너무 고귀하다.
동생은 흰을 질투하면서도 항상 갈망했다. 그 욕망의 존재가 자신에게 여전히 존재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고 순간마다 그녀의 몇 안 되는 이야기들을 알아가고 싶어하는 그 모습은 턱없이 무모하면서 아프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욕망은 흰과 닮아 있다. 慾은 얼핏 그 뜻처럼 채워진 듯, 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비워져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존재하고, 책임감을 지며 살아가게 하는, 있지만 없는 것을 향해 글쓴이는 애도한다.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슬픔에 이미 푹 적셔져 있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은 301호의 철문처럼 아무리 칠하고 덮어도, 칠하고 덮은 색깔로 흐르는 슬픔이 다시 슬픔으로 굳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나 기리게 한다. 숭고한 흰을 향해 침묵하며 난롯불 앞에서도 아기들의 아랫니를 닮은 언니라는 단어를 읊조리면서도 계속해서 애도한다.
하얗게 웃는 언니에 대한 조각들이 눈으로도 흐르고, 페인트로도 흐른다. 단어로도 흐르면서 꾸덕꾸덕한 슬픔은 마음을 단단해지게 한다. 결국은 다시 흐를테지만 좀 더 딱지같이 흐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The Elegy of Whiteness는 흰으로 시작했지만 더러워진 것들을 대신하여 흰으로 시작해서 흰으로 돌아간 세계를 향해 건네는 작별과도 같다. 동생은 평생의 숙명처럼 그 세계를 갈망하고, 그리워했다. 글쓴이는 계속해서 그 당신, 언니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고, 보여주려 하고, 바래다주고 싶어한다.
또한 이 작별은, 같은 흰이 아니라 희지 않음이 건네는 인사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슬픈 작별인 것이다. 그토록 원하고 질투하고 그리워하는 세계를 향한 필연적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당연한 마음을 남겨두고서 하는 어려운 결정이다. 놓아줘야 하는 것을 놓는 연습. 아픔을 아픔으로 두고 흰처럼 굳건하게 살아가겠다 도전하는 마음의 자세.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 마실거라고 다짐하는 것, 죽지 말고 살아가라고 말하는 그 최선의 작별이 그래서 더더욱 덤덤하지만 슬픈 까닭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전적이고 굳건한 이 애도의 시는 비로소 최고의 아름다움, ‘흰’ 과 같은 것이 된다.
오랜 시간 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이 아픈 이야기 속에서 아프지 않게 말하는 법을 닮아가고 싶었다. 역설적으로 세상 그 어떤 것들보다 순수한 모습으로 깨끗하면서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흰을 나도 그려본다. 이 책의 이미지처럼 다른 형식으로 글을 쌓아가고 싶었다. 눈처럼 소복하게 쌓이겠지만 결국 슬픔으로 녹아버리는 이 흰이 결국에는 희지 않은 것들에게 스며들고 양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작은 그리움으로 굳고 은은하게 사람들에게 남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The Elegy of Whiteness 만이 할 수 있는 큰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위태로워 보이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 그런 책이었다.
여린 것에 대해 간과하지 말자.
나도 흰일 수 있을까. 아픔을 아픔으로 두고 덤덤하게 살아가는 연습, 욕망을 가지는 동시에 놓아줄 수 있는 하얀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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